나는 절대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
송인수
ISBN
979-11-7048-696-1(03810)
출간일
2024-04-30
도서분류
자서전
상세정보

프롤로그

‘뿌린 대로 거두는 삶’ 나는 이렇게 살았다

 

 

지난 86년의 삶을 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 아득하기만 한 세월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가끔 돌아보면 신기할 때도 있고,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다른 어떤 사람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파란만장했던 내 삶은 그러나 특별하거나 빛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왔을 뿐이다.

나는 1938년 3월, 충북 청원군 문의면(現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에서 한 치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가장 역동적인 시기에 태어나 힘들고 어려웠던 삶을 살았던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든 어느 곳에서나 쓸모 있게 태어나도록 신이 정해 준다고 한다. 또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내가 열여섯 살 때 어머니를 따라갔던 사찰의 스님에게서였다. 충남 계룡시의 ‘신도안’에 위치한 사찰이었는데 제법 규모도 컸고 이름이 있는 사찰이었다.

그때 나는 내 삶이 너무 힘들어 어머니께 여쭸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왜 저마다 그리 다르냐?”라고. 어머니는 “전생의 삶에 따라 현생의 삶이 달라지는 법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더불어 전생에서 잘못 살아온 죄업에 따라 현생에 그 대가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또 죽은 영혼 속에 과거의 잘잘못이 상흔처럼 각인되어 있어 신이 그 흔적을 보고 세상에 다시 내보낼 때 그 상황과 업에 맞는 여러 아버지 중 한 명을 본인이 선택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그러면 아기의 점지와 해산을 관장하는 삼신(三神)이 그 아버지에게 잉태되도록 해준다고 한다. 결국 부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지, 부모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닌 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선택했기에 같은 운명을 갖는다. 그래서 당연히 부모는 나와 비슷한 운명인데,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며 살기 마련이다. 모든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 큰스님의 설법을 전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공감했고, 앞으로의 삶은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했었다. 그 후로는 아무리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어떤 상황도 견뎌내며 인내로 극복하면서 주어진 삶의 환경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을 스스로 약속했다.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이자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훗날 자식들에게도 누가 되지 않는 아버지가 되자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에서도, 교편을 잡고 있던 학교에서도 좋은 직원, 좋은 교사로서 동료들과 제자들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남겨주고, 내가 떠나더라도 내 빈자리를 아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았다. 교편생활 중 큰 질병이 힘들게 했던 시절에도 교단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리를 지키려 애를 쓰면서 출근해 제자를 가르쳤다. 돌이켜보면 그런 억척스러운 삶의 의지와 성실한 자세가 나를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에서 은퇴한 이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어왔던 많은 봉사활동과 문화학교 교사 역시 그런 마음에서 이어온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최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늙고 약해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24㎞의 거리를 차로 운전해 텃밭이 있는 농장에 다니며 일을 한다. 힘이 닿는 대로 푸성귀를 일구면서, 그리고 내가 지은 농산물을 이웃과 자식들에게 나눠주면서 내 몫의 삶을 살아가려 애를 쓴다. 이렇게 사는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군다나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 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기고픈 심정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마음을 내가 갖고 사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기인했다. 인간은 그 누구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처음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부모가 자신을 돌봐줬다는 사실일 것이다. 부모에게 생명과 신체를 부여받고 그들의 돌봄으로 컸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자각하는 것이다. 나의 86년의 삶 역시 부모로부터, 더 명확히 말한다면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고 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이어왔음을 안다.

삶이란 뿌린 대로 거둬들이는 법이다.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렇다. 우리 옛 속담에 “종두득두(種豆得豆)”, 즉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공부하지 않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릴 수 없다. 뭔가를 열심히 해야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선행은 선한 결과를, 악행을 하면 악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경구를 내 삶의 이정표 삼아 한시도 잊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 이웃은 물론이고 모르는 이들에게도 덕(德)이 되는 말과 행동으로 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살았다. 상대방에게 그런 선하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삶이란 뿌린 대로 거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작고 투박한 책은 그런 내 86년 인생을 담담히 기록한 고백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쓰이고 있으나 올바른 삶을 위해 필요한 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로 쓰였든 간에 읽을 만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양서로 자리매김한다면 그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렇듯 존재 의미가 있는 책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나의 자손들이 더 훌륭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는 책이면 더욱 좋겠다. 그것이 ‘망구(望九)’를 지나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늙은이의 유일한 소망이다.
생각의뜰 생각의뜰 · 2024-04-18 13:38 · 조회 120